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을 맞아 임진강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장렬히 전사한 유극량 장군의 어머니는 노비였다. 16세 때 대감마님이 아끼는 옥배를 깨뜨려 꾸지람이 두려워 야간도주하였는데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나타나 덤벼들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무렵 황해도 연안에 토반으로서 유좌수(劉座首)라는 분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일찌기 상처하여 홀아비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안장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술 몇 잔을 들고 거나하게 취하여 밤늦게 돌아오는데 송청 뒷산고개를 막 넘으려니까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눈에 환히 불을 켜고 유좌수를 한참 바라보더니 그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호랑이가 있던 곳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보니 어찌된 일인지 어떤 한 처녀가 실신하여 쓰러져 있었다. 유좌수는 얼른 심장을 짚어보니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황급히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와 안방에 뉘이고 얼마동안 기다리니 처녀는 그때야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유좌수는 처녀의 말을 듣고 호랑이가 간밤에 처녀를 등에 업고 천리길을 달려 이곳까지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라 믿고 부부가 되어 중종 26년(1531) 유극량을 출산했다고 한다. 유극량은 빼어난 자질과 노력을 통해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올라 좌승지와 부총관, 충청도수군절제사를 거쳐 임진왜란(4월13일) 때에 조방장으로서 죽령을 지키다가 5월 4일 부원수 신할을 쫓아 임진강으로가 방어를 하게 되었다. 이때 제찰사(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의 지휘하에 있는 부원수 신할이 끝내 임진강에서 익사하니 극량은 5월 4일 부원수가 되어 5월 17일 유극량 장군만이 고군단졸로 피흘려 싸우다가 날이 저물자 군졸들은 모두 흩어지니 한숨지어 수레 위에 걸터앉아 말하되 「이것은 내가 죽을 땅인가 보다」하고 칼을 집고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금석과도 같았다. 왜군들이 곳곳에서 몰아닥치고 장군은 장검을 들어 수많은 적을 사살하였으나 5월 18일 술시(62세)에 적장의 칼에 맞아 순절하였다. 임금께서는 예관을 보내어 초혼치제하고 군내면 송산리에 예장 경술 5월 병조참판에 증직 무의(武毅)라 시호를 내리고 임진강나루 언덕위에 조선충신 유극량 대첩비를 세웠으며 또한 송경에 순절사를 건립 천곡(泉谷), 송암(松岩)과 함께 배향케 하는 한편 유양비를 세워 길이 영혼을 달래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