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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문화원은 우리 고장의

  • 전통문화 보존계승과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명유래

우리 고장 파주의
지명유래를 소개합니다.

21 관리자 2022-12-20 127
금촌(金村)의 얽힌 유래
 학령산하(鶴翎山下) 금촌리는 한일합방 후 현 파주시청이 소재하고 있는 골짜기로 옛날 교하현청이 아골(衙谷)에 있을 당시 말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던 지역인 마무리(馬武里)에 10여가구가 살고 있었던 지역이다.  홍수가 범람할 때면 도감벌 쇄재 개울물이 넘어 흘러왔다고 하는 무너미고개(水輪嶺)에 7~8호, 금촌초등학교로 넘어 다니는 고개 샛곳 양편 산기슭에 드문드문 몇 집이 있었으며 현 금촌시장은 논밭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융희 4년(1910) 일제침략으로 말미암아 한일합방이 될 무렵 일본인들이 광무 9년(1905) 11월5일 경의선(499km)의 개통 당시 이곳에 역명을 정하고자 40여호가 살고 있는 이 역 건너편 새마을(新村洞)에 사는 촌노(村老)에게 이 부락명을 물으니 새마을이라 하자 새(新)을 쇠(金)로 알고 쇠마을(金村)역으로 정하게 되었다 한다. 일제치하 금촌학교(구 도립병원터)가 창설되었고 8·15 해방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파주시청을 유치하게 되니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 현 금촌의 현상이라 하겠다. 풍수학설에 의하며 학령산(鶴翎山)앞 학의머리(鶴頭) 부분은 금산(金山)으로서 금의 마을(金村)이 되었다고도 유래하며 돈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면 많은 돈을 벌게 되며 10년안에 돈을 벌어 나가야지 그대로 있으면 오히려 망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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