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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문화원은 우리 고장의

  • 전통문화 보존계승과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명유래

우리 고장 파주의
지명유래를 소개합니다.

16 관리자 2022-12-20 106
파주 염씨(坡州 廉氏)시조 근원 유래
  파주염씨(廉氏)는 우리 파주시와 연관이 깊은 성씨중의 하나이다.해동역사등 기록을 보면, 염씨성을 최초로 가진 사람은 낙랑군때의 '염사치'인데, 나라에 공을 세움으로써 광무제가 염씨 성과, 밭과 집 및 관모를 하사했고, 염사읍군에 봉했으며, 거주지는 낙랑군 함자현(지금의 파주 파평) 이라고 되어있어 이 때부터 파주에 염씨가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또, 파주염씨의 시조는 염형명(廉邢明)으로,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까지 봉성(지금의 파주)에서 살면서, 고려 개국시의 공적으로 삼한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대사도에 오른 분이다.그의 후손인 염제신(廉悌臣)은 1304년(고려 충렬왕 30)에 이곳 봉성산하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며 기골이 장대 총명하여 11세때 원나라에 들어가 고모부말길 평장사(姑母夫末吉平章事)의 집에서 10년 동안 수학을 하는 한편 태정황제를 수년간 시종하며 총애를 받았고, 어머니를 만나러 3차례 귀국뒤에 다시 들어가 상의사(尙衣使)로 근무하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영구 귀국을 청하자 정동성랑중(征東省 郞中)에 임명되어 돌아와 고려 충숙왕의 신임을 받아오면서 벼슬길에 올라, 충목왕 때는 유석익대공신으로 삼사우사찬성사(三司右使贊成事)를 역임하고, 공민왕때는 좌우정승(左右政丞)을 거쳐 단성수의동덕보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도첨의 문화시중(壁上三韓三重大匡都儀 門下侍中)에 이르러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출장입상으로 내외를 평정한 공적으로 이를 가상(嘉尙)히 여겨 공민왕이 친히 유상(遺像)을 그려주었는데, 지금은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다.염씨 후손들은 이 염제신(廉悌臣)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시호는 충경공이고, 목은 이색으로 하여금 묘비문을 쓰도록 봉교서(왕의 하교에 의거 글을 씀)가 내려져,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묘소앞에 신도비가 세워졌다고 한다.이로 인하여 본관(本貫)을 봉성에서 곡성(曲城)으로 하다, 지명 개칭에 따라 서원(瑞原)으로 되었고, 다시 종중결의에 따라 파주(坡州)로 개관(改貫)하게 되었고, 파주염씨는 단일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http://www.pajooyom.com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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